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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칼럼

안시 명암비가 진짜 명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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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플레이의 명암비에 대해서 오랜만에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오래 전부터 리뷰에서 간간이 설명했고, 하이파이넷 Wiki에도 간단하게 정리했지만 아직도 오해가 많은 것 같다.
요즘 느닷없이 안시 명암비가  풀 온/오프 명암비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마케팅 차원에서 다시 거론되고 있다.(베타 뉴스 참조) 각 AV 사이트뿐 아니라 Hifi-Choice 같은 잡지에까지 동시에 비슷한 내용이 뜨고 있으니 말이다.

ANSI 명암비가 중요하다?

사실 엄밀하게 따져서 안시 명암비가 더 중요하다는 말은 뒷북이다. 뒷북도 한참 늦은 뒷북이다.
안시 명암비가 온/오프 명암비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CRT 시절에는 너무도 당연한 소리였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에 이견이 없듯이 여기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을 수 없었다.(과거형임에 주목하자)
스크린이나 패널을 완전히 꺼버리는 꼼수를 부리지 않고 블랙을 표현할 때, 아직까지 지존은 CRT이다.
CRT에서 풀 온/오프 명암비는 기본이 몇 만 대 1이다. 요즘의 LCD처럼 글로벌 디밍, 로컬 디밍, 그리고 프로젝터의 자동 아이리스 조정 같은 속임수 없이 고정으로 그렇게 나온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CRT도 "절대 블랙"은 깊게 내려가지만 안시 명암비는 그닥 좋지 않았다.
직시형 CRT(브라운관 TV라고 부르는...)는 대개 100:1 안팎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 화면에서 나오는 블랙과 화이트의 비율이 그것밖에 안 된다고?
4x4 체커보드 패턴이 아닌 8x8, 16x16 등으로 좀 더 가혹하게 측정하면 더 웃기는 수치가 나온다.
그리고 사각형의 중앙을 재느냐, 흑과 백의 경계면에 가까운 곳을 재느냐에 따라 또 큰 폭으로 달라진다.
CRT라도 직시형보다 프로젝터의 경우는 좀 더 높은 명암비가 나온다. 보통 7인치 삼관식에서 200:1 수준, 9인치급에서 300:1 이상이라고 스펙에서 밝힌다. 전체 블랙을 측정할 때와 달리 안시 명암비 패턴은 밝은 화면이라서 스크린의 빛이 렌즈로 다시 반사되어 깍아 먹기도 하고, 빛이 프로젝터의 렌즈나 직시형 스크린의 유리층을 통과하면서 간섭과 산란이 발생하는 것도 이유이다.(결국 장초점 렌즈가 포커싱뿐 아니라 명암비에서도 유리하다)
그런데 요즘 나오는 PDP, LCD, DLP 같은 고정 화소식 디스플레이는 픽셀 단위로 컨트롤이 된다. 덕분에 직시형끼리 비교하면 절대 블랙(풀 오프)은 CRT에 상대가 안 되지만 안시 명암비는 훨씬 높은 수치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LCD는 투과형이라 어두운 부분의 빛을 차단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결국 프로젝터 방식만 따지면 DLP의 안시 명암비가 가장 좋고(CRT 삼관식보다 더 좋다) LCD나 Lcos 등은 이보다 떨어져서 CRT 수준과 비슷한  안시 명암비가 나온다.

그러니까... 요즘 LCD에 밀려 주춤한 DLP 제품으로서는 안시 명암비가 중요하다는 소리를 할 법도 하다.
그런데 안시 명암비와 풀 온프 명암비 중에 어느 것이 중요한가에 대해서 미국에서 몇 년 전에 논란이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더 이상 '절대 진리"가 아니다.
기본 블랙이 깊은 CRT에서는 온/오프 명암비보다 안시 명암비가 더 중요했다.
그런데 고정 화소식으로 바뀌면서 안시 명암비는 좋아졌는데 기본 블랙이 안 내려간다.
따라서 밝은 장면에서는 인트라필드 컨트라스트가 살면서 쨍하고 펀치력있는 영상이지만 어두운 장면에서는 안시 명암비가 1000:1이 넘어도 블랙이 떠서 거슬릴 수 있다.
인간의 눈이 가진 고정 명암비 판별력은 100:1 수준이라는 것이 생리학적, 의학적인 정설이다.
대신 홍체가 주변의 밝기에 적응하면서 판별하는 일종의 다이나믹 명암비를 따지면 100만 :1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말은 안시 명암비가 100:1이 넘어갈 때는 인간의 눈이 구별하지 못한다고도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구분이 된다. 안시 명암비 300:1짜리 영상과 1000:1짜리 영상(특히 밝은 장면...)을 나란히 보면 확실히 펀치력과 임팩트, 입체감, 블랙 표현 등에서 차이가 난다.(LG LH95 리뷰 2부 "명암비", 그리고 3부 "블루레이 재생" 다크 나이트의 빌딩 스크린샷 부근 참조)  그래서 안시 명암비가 중요한 것이다.
어쨌든 대부분의 웬만한 장면에서는 안시 명암비 200:1과 800:1의 차이를 크게 느끼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두운 장면에서 온 오프 명암비 2000:1과 8000:1은 엄청난 차이다.
화이트의 휘도가 40nit로 같다고 쳤을 때 블랙이 0.005nit면 8000:1이고, 0.02nit면 2000:1이다.
2.35:1 이상의 화면비 소스에서 아래 위를 레터박스로 마스킹한 블랙을 보거나, 전체적으로 어두운 장면에서 0.02nit와 0.005nit의 블랙은 아주 극명하게 다르다.

그렇다고 안시 명암비를 무시하자는 말이 아니다.
안시 명암비는 오히려 밝은 장면에서 티가 많이 난다. 온/오프 명암비는 어두운 장면에서 티가 난다.
위에 링크한 기사에서처럼 "스타워즈"의 우주 공간에서 별이 더 밝게 반짝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주 공간의 블랙 자체가 허옇게 뜨는데 안시 명암비가 높으면 무얼하겠는가?
불을 완전히 끈 암막 상태에서, 어두운 장면의 비중이 방송 소스보다 훨씬 높은 영화 타이틀을 주로 감상하는 것이 프로젝터이다. 그리고 프로젝터를 만드는 회사에서 지금와서 온/오프 명암비보다 안시 명암비가 더 중요하다고 외치는 것은 넌센스이다.(그것을 그대로 받아적은 기자야... 흠,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안시 명암비가 진짜 명암비?

용어 자체만 따질 때는 이 말이 맞다.
명암비라는 것은 하나의 영상에서 가장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비율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각각 다른 화면을 띄우고 측정하는 Full On/Off 명암비는 "명암비"라고 할 수 없다.
영상 분야에서 사용하는 정확한 용어는 "다이나믹 레인지"라고 보면 맞다. 그 디스플레이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어두운 화면과 밝은 화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디오의 다이나믹 레인지처럼 dB(데시벨)이 아닌 비율로 나타내기 때문에 "관행적"으로 명암비로 불리고 있다.
요즘 출시되는 대부분의 디스플레이는 안시 명암비가 아닌 온/오프 명암비 수치로 발표된다.
온/오프 명암비는 전체 화면에 전백(全白-Full On : 100% 화이트 필드) 패턴을 띄우고 휘도를 측정한 뒤에, 다시 전흑(全黑-Full Off : 블랙 필드) 패턴에서 디스플레이에서 낼 수 있는 가장 깊은 블랙을 측정한다.
다시 말해서 블랙과 화이트를 각각 다른 장면에서 따로 측정한다는 말이다. 온/오프 명암비는 다른 말로 Full Field 명암비라고도 하는데 창(Window)형태가 아닌 전체 화면(Field) 패턴으로 측정하기 때문이다. 예외적인 디스플레이는 PDP로 독특한 방식으로 수치를 측정하기 때문에 Full Field 명암비라는 말을 적용할 수 없다.
Full On/Off 명암비가 Full Field Contrast인 것에 반해서, ANSI 명암비는 한 패턴에서 블랙과 화이트를 모두 측정하므로 Intra Field Contrast라고도 불린다.
명암비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은 아래 링크로 가서 과거에 올렸던 Wiki의 내용을 참조하기 바란다.
* Full On/Off 명암비
* ANSI 명암비
* 명암비

그래서 결론은?

요즘 나오는 제품은 대개 안시 명암비가 괜찮다.
그리고 밝은 곳에서 TV를 시청한다고 보면 안시 명암비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직시형 TV라도 불을 끄는 바로 그 순간부터는 안시 명암비보다 온/오프 명암비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다시 말하지만 CRT는 그렇지 않았다. CRT는 불을 끄고 봐도 절대 블랙이 깊게 내려가기 때문이다.
하물며 직시형도 아닌 불 끄고 보는 프로젝터 회사에서 "이제 와서" 안시 명암비가 더 중요하다고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간단하게 예를 들겠다. 아래 중에서 골라 보시길...
안시 명암비 600:1, 온/오프 명암비 2000:1짜리 프로젝터.
안시 명암비 300:1, 온/오프 명암비 4000:1짜리 프로젝터.

좀 더 확실한 예를 들어 보겠다.
해상도나 색감 등의 요소는 다 무시하고... 안시 명암비 100:1 안팎인 브라운관과 500:1인 LCD를 나란히 놓고 보면서도 LCD의 명암비가 더 좋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아니... 안시 명암비가 더 높은 DLP 프로젝터를 보면서 삼관식보다 "명암비"가  더 좋다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분명히 과거(CRT 시대)에는 안시 명암비가 더 중요했다. 이건 진리다.
그런데 요즘도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은 소비자를 오도하려는 의도이거나...스스로도 정말 그렇게 믿고 있다면 완전한 "봉창"이다. 그리고 이런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새로운 지식처럼 그대로 받아 적은 기자도 문제이다.
안시 명암비와 온/오프 명암비는 둘 다 중요하다.
CRT는 온/오프 명암비가 기본적으로 잘 나왔기 때문에 따질 필요가 없었다는 말이다.
3만:1, 4만:1, 5만:1쯤 되는데 뭐하려 따지냐는 말이다.(물론 요즘은 100만, 200만, 300만, 500만으로도 싸운긴 한다. 이것 역시 웃기는 일이다. 진짜 온/오프 명암비는 '고정 명암비'로 따져야 한다)
그런데 요즘 고정 화소식의 허접한 블랙 능력을 가지고도 온/오프 명암비보다 안시 명암비가 더 중요하다???
조리개나 백라이트를 고정시키고도 15000:1을 넘기고 나서 그런 소리를 했다면 이해가 간다.
한마디로 웃기는 이야기라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프로젝터 중에서는 DLP 방식을 가장 좋아한다.
안시 명암비가 좋아야 한다는 말도 맞고 말이다.
그러나 안시 명암비에 못지 않게 온/오프 명암비도 중요하다.
다만 요즘은 온/오프 명암비를 아이리스 조절을 통한 꼼수로 발표하기 때문에 의미가 낮아지고 변별력이 떨어진 것이 문제이지, 그렇다고 온/오프 명암비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TV에서 백라이트를 조정하는 주제에 몇 백만 :1을 부르짖으며 싸우는 것도 비슷한 케이스다)
그리고 아이리스 조절을 하지 않은 패널의 고정 온/오프 명암비도 DLP가 LCD보다 좋다.
다시 말해서 DLP 패널이 온/오프 명암비든, 안시 명암비든 모두 LCD보다 우수하다는 말이다.
요즘은 DLP든, LCD든 온/오프 명암비의 수치를 전부 아이리스 조정을 통한 동적 명암비로 발표하니까 소나 개나 몇 만:1이 되고 우수성을 차별화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래서 DLP가 주력인 회사에서는 안시 명암비가 더 중요하다는 "마케팅적 논리"를 폈을 것이다.
차라리 JVC처럼 "진짜 명암비는 고정 명암비"임을 주장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다음번 칼럼에서는 필자가 왜 몇 만 :1이라는 동적 명암비를 무시하고 고정 명암비만으로 세팅을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겠다.

*고정 명암비 vs. 동적 명암비로 계속

*필자 주1 : "안시 명암비 만쉐이!!!"를 외치는 회사의 제품이 온/오프 명암비는 40000:1이라고 발표했다.
훌륭한 수치이다. 그러나 이것이 고정 명암비라면 그래도 안시 명암비 만세를 외칠까?
당연히 고정 명암비가 아니다. 아이리스(조리개) 조절을 통한 다이나믹 명암비이다.

*필자 주2 :조리개로 장난치지 않고 고정으로 15000:1이 넘는 프로젝터로는 JVC의 D-ILA 제품들이 있다.
이들은 LCoS 패널이기 때문에 안시 명암비에서는 DLP에 확연히 밀린다. 그리고 지금껏 필자가 올렸던 프로젝터 리뷰를 보면 알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프로젝터 방식 중에서 DLP를 가장 선호한다.
그러나 선예감이나 응답속도 등의 우위를 제외하고 순전히 명암비적인 요소만으로(다시 말해서 블랙 표현만 가지고) 필자더러 프로젝터를 고르라면 JVC다. 명암비 수치만으로 보면 고정 온/오프 수치가 높은 것이나, 안시 수치가 낮은 것 등 CRT 삼관식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고도 하겠다. 또한 포커싱이나 윤곽 표현이 DLP에 비해서는 떨어지지만 CRT에는 밀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필자는 DLP派이다.